태국 불교계의 부패

Posted by 향수코디
2008. 1. 28. 15:32 태국정보/태국불교

태국 불교계의 부패

조흥국

1. 왓 꾸 스캔들

지난 수십년간 태국의 불교계에서는 승려들의 섹스 스캔들과 금전 관련 부패사건이 끊임없이 터졌다. 그 중에는 종종 불교계의 저명한 큰 스님들이 연루된 것들도 있었다.
2003년 6월 18일 방콕 인근의 논타부리 주에 소재한 왓 끌랑(Wat Klang)에서 난타피왓 스님 (Phra Khru Nantha-phi wat)이 살해되었다. 당시 73세인 그
는 이 절의 주지였다. 죽기 전 그는 4명의 보디가드의 경호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생명에 대한 위협이 상당히 심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2002년 말에 논타부리의 왓 꾸(Wat Koo)에서 왓 끌랑으로 옮겨왔다. 왓 꾸의 주지로 있는 동안, 그는 마을주민들과 상당한 알력관계에 있었다. 거기에는 드러난 것으로만 볼 때 다음의 두 가지 배경이 깔려 있었다.
첫째, 마을주민들은 짜오프라야 강의 상륙용 잔교로 가려면 절 경내를 지나가야 되는데, 난타피왓 스님은 그들에게 절에 속한 토지의 사용을 금했다. 그 때문에 그가 2002년 12월에 왓 꾸로 돌아가 주지직을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때, 마을주민들이 쏜 총에 맞아 다리에 부상을 입었던 적이 있다. 태국의 현행법에 따르면, 승려는 국가공무원 신분이다. 이에 따라 그는 마을주민 몇 명을 공무원 살해미수 혐의로 고발했다.
둘째, 난타피왓 스님은 왓 꾸에서 주지로 재직시 다양한 방식으로 돈벌이를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종종 매우 비불교적인 방식에 의존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마을주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왓 꾸는 매년 5월 31일에 열리는 수난타 테위 왕비(Phra Nang Sunantha Thevi) 축제로 유명하다. 수난타 테위는 라마5세로 알려진 쭐라롱꼰 왕(재위 1868-1910)의 이복 여동생으로 그의 가장 총애받는 왕비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1881년 딸과 더불어 짜오프라야 강을 따라 방빠인(Bang Pa-In) 궁전으로 유람하던 중 배가 전복되어 모두 익사했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나이는 21세였다.
마을주민들은 수난타 왕비와 그 딸이 왓 꾸 사원 바로 앞의 강물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믿고 있다. 난타피왓 주지는 절 경내에 보트 한 척을 전시해놓고 그 앞에 제단을 설치하고 보트에 금박을 붙이는 등 화려하게 장식해놓고는 이것이 왕비가 타고 가다가 익사했다는 보트라고 말한다. 마을주민들도 이에 대해 별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배는 전혀 19세기 말의 전형적인 왕실 배처럼 보이지 않는다.
난타피왓 스님은 또한 마을주민들에게 왕비의 혼에 씌였다는 한 무당의 신통력을 믿도록 부추겨 왔다. 왓 꾸를 찾는 마을주민들은 절의 명물인 와불(臥佛) 외에도 수난타 왕비의 영정에 대해서도 경배를 올린다. 절 경내에 세워져 있는 라마5세의 동상도 참배의 대상이 되어 있다. 왓 꾸의 경우, 라마5세가 수난타 왕비의 남편이라는 측면이 부각된다. 그러나 라마5세에 대한 숭배는 태국 전역에 퍼져 있다. 모두 기복적인 동기와 관련되어 있다.
난타피왓 스님은 그 밖에도 소도살 방지 프로젝트를 전개해 왔다. 그는 이것을 불교의 오계(五戒) 중 가장 중요한 계율이라고 할 수 있는 살생금지를 위한 공덕축적의 기회로 포장하여, 신도들이 도살될 소 한 마리를 살리는 기금으로 9,999바트(약 30만원)씩 시주하도록 했다. 그는 절 경내에 소의 동상을 세워두기도 했다. 소도살 방지 프로젝트는 그가 왓 꾸로부터 추방되던 2002년 11월까지 지속되었다.
마을 촌장의 진술에 따르면, 난타피왓 주지는 이 행사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신도들이 자신으로부터 예언을 듣거나 성수(聖水)를 받아가도록 함으로써도 많은 돈을 끌어모았다. 그는 장례식 때문에 절을 찾는 마을주민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돈 되는” 사람들만 상대했다.
난타피왓이 살해된 후, 왓 꾸 사원측에서는 절의 돈 1억 바트가 사라졌다고 경찰에 고발하면서 난타피왓의 계좌를 동결하고 조사할 것을 의뢰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의 11개 계좌에 총 1억 1,900만 바트(약 35억원)가 3명의 각기 다른 명의로 예금되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그밖에도 벤츠 승용차 1대와 논타부리 주의 빡끄렛(Pakkret) 지역에 상당히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첩도 4명이나 두고 있었다.

2. 불교계의 부

태국에서 한 승려가 이처럼 많은 돈을 절 “경영”을 통해 모을 수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북부 지방에서는 한 절의 주지가 자신의 은행계좌에 2억 바트를 갖고 있고, 그의 친지들 계좌에도 5천만 바트가 들어있음이 최근 드러난 바 있다. 특히 물질에 대한 탐욕과 소유를 경계하는 것에 있어서 어느 종교보다 더욱 엄격한 불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그 모양새가 심히 비틀려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태국 불교사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보면 더욱 놀라울 뿐이다.
태국의 종교위원회(House Committee on Religion)에 따르면, 불교계는 부동산과 현금을 합쳐 900억 바트(2조 7,00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사원의 재산은 법적으로는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공동의 자산과 현금으로, 중앙의 종단에서 관리한다. 다른 하나는 개별 사원의 자산으로, 이것은 각 사원의 주지에 의해 관할된다.
종교위원회의 추산에 따르면, 중앙 종단 관할 하에 있는 공동 자산은 400억 내지 500억 바트이고 여기에 약 20억 바트의 현금이 추가로 있다. 태국 전역에는 약 3만 개의 절이 있다. 절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모두 합쳐 300억 내지 400억 바트라고 본다. 현금은 총 10억 바트 정도로 본다. 이상의 자산에는 약 7,000개의 버려진 절과 6만 라이(rai) 의 토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3. 절-마을 관계의 변화

19세기까지의 전통 시대에 절 및 스님과 마을과의 관계는 오늘날과는 달랐다. 절은 마을에 대해 의존적이며 동시에 의무적인 관계에 있었다. 주지와 승려들은 대개 그 마을 출신이었으므로 마을주민들과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마을로서도 절이 출생, 생후 1개월된 아기의 수호정령을 붙들어놓는 탐콴(tham khwan)의식, 남자들의 일시적인 출가, 결혼, 장례 등 각종 통과의례시 예식을 집행해주고 자식들의 교육을 책임져줄 뿐만 아니라, 마을의 사회적 유대관계의 구심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절에 대해 의존적인 관계에 있었다. 한 마디로 승려 및 절과 마을주민들은 상호 의존적이었고 신뢰하는 사이였다.
승려들은 마을이 자신들의 수도에 필요한 물질의 공급원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마을주민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처신에 있어서 매사 조심하였다. 계율에서 심히 벗어난 행동을 할 때는 주민들의 불신을 받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처럼 사원들은 철저히 마을과 연계되어 있었다. 수도의 중앙종단은 시골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승려들은 자연히 자신들의 활동을 마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해나갔다.
마을과 절과의 이러한 관계는 20세기 초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불교계는 행정체계의 중앙화와 더불어 중앙화되었다. 이와 함께 승려들의 위계질서도 관료제도를 모방하여 체계화되었다. 승려 고위직은 특히 방콕의 중앙종단에 충성하는 자들에게 주어졌다. 여기에 거액의 뇌물이 오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대적인 교통망과 운송수단의 발전도 승려와 마을주민간 관계의 변화에 기여했다. 승려들은 마을을 벗어나서도 시주와 후원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을에 대한 의존적 관계가 그만큼 적어진 셈이다. 이제 승려들이 보다 물질주의적, 출세지향적으로 되는 가능성이 더욱 열린 것이다.

4. 불교계 재정의 개혁

왓 꾸 스캔들을 계기로 사원 재산의 관리 개혁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현재 불교계 재정관리를 보면, 자체적인 사원운영위원회를 두어 관리하는 절들이 있는가 하면, 주지의 재가하에 재가(在家)속인이 사원의 자산과 현금을 관리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지들은 돈을 스스로 관리한다.
태국의 현행 법은 스님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주를 개인적인 기부금으로 보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자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난타피왓이 유서를 남긴 것도 이러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지들이 절의 돈을 사적인 소유물로 간주하여 이를 혈육에게나 법적인 관리인에게 주거나 상속하는 것은 법 차원을 떠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과제는 불교계의 재정을 어떻게 개혁하느냐는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절의 재정관리를 투명하게 만들어 전통 시대에서처럼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절과 스님에 대해 다시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절의 재정 문제는 불교계의 인사 시스템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봉건적인” 승려 위계체계를 폐지하고, 지역사회로 하여금 마을 사원의 승려들에게 지위를 부여할 권리를 갖게끔 할 것을 제의한다.
절과 스님들의 재정상태가 항상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최근 태국에서 승려들의 재정적 부패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스님들의 재정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자들이 많아졌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사원과 승려의 개혁에 대한 이니셔티브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불교계에서 나오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그 이유는 불교계와 정부의 이해관계가 상호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태국의 국가불교청(National Buddhism Office)의 부청장인 분시 빠나찟(Boonsri Panajit)은 “일반적으로 지방의 읍, 군, 도 급에 속하는 절의 원로 스님들은 사원의 재정에 대한 관리권을 스스로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불교계 재정의 개혁에 앞서 절과 불교승려들이 처한 현실을 우선 이해해줄 것을 부탁한다. 예컨대 오늘날 절과 스님들은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교통비, 대학등록금, 도서구입비 등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3년 여름에 태국의 종교ㆍ문화ㆍ예술위원회는 불교사원에서의 재정 관리에 대한 장기적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원 자산과 승려 자산을 분리되어야 한다.
► 사원 자산은 토지, 건물, 자동차, 일상적인 시설 등을 포함하는 부동산과 현금으로 구성되며 이에 대한 관리는 상가(Sangha)위원회가 제정한 법규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 절에 바쳐진 시주는 그것이 돈이건 건물이건 간에 사원운영위원회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운영위원회는 최소한 5명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모든 현금출납은 장부에 기재되어야 한다.
► 부동산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도 장부에 기록되어야 한다.

종교ㆍ문화ㆍ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인 위차이 차이찟와닛(Wichai Chaijitwanich)은 승려들이 수계 받는 승려에게서 받는 돈이나 장례식에서의 염불에 대한 사례로 받는 돈은 관습에 따라 사적인 재산으로 보유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돈의 액수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경우 기존의 법규정이 수정되어야 한다.
태국의 불교신자들은 시주를 할 때, 그것이 승려에 의해 사적으로 착복되더라도 자신은 공덕을 축적했다고 믿는다. 법적으로는 승려들의 재산 축적을 막을 길이 없다. 불교의 계율은 승려가 재물을 취할 수 있으나 그것은 오직 자신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정도에서만 허용한다.
사원의 자산을 승려의 자산과 분리하는 것은 여러 점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은 승려들이 계율을 보다 잘 어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며, 승려들의 세계에서 부유한 승려와 가난한 승려의 차이를 상당 부분 없앨 수 있을 것이다.